불로장생약이 개발된 후, 인류는 정말 행복해졌을까?

인류가 그토록 염원하던 꿈, ‘영원한 삶’이 현실이 된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요?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을 넘어 죽음 자체가 사라진 세상. 오늘은 불로장생약이 개발된 이후 펼쳐질 가상의 미래, 그 씁쓸하고도 흥미로운 공상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1. 인류 최대의 혁명, ‘불로장생약’의 탄생

드디어 인류가 오랜 세월 꿈꿔온 약이 개발되었습니다. 바로 ‘불로장생약’입니다. 이 약 한 알이면 세포의 노화가 멈추고, 신체는 가장 활력 넘치는 30대의 젊음을 영구히 유지합니다.

“죽지 않는 세상, 영원히 늙지 않는 인간.”

뉴스 속 이 한 문장은 전 세계를 흥분과 공포로 동시에 몰아넣었습니다. 경제는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장례식장은 역사 속 유물이 되어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축제가 끝나자, 예기치 못한 새로운 문제들이 세상을 뒤흔들기 시작했습니다.

인류 최대의 혁명, '불로장생약'의 탄생


2. 인구 폭발의 역설: 저출산 한국, 세계의 표준이 되다

죽지 않으니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식량, 주거, 자원 고갈은 순식간에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과제가 되었습니다. 토머스 맬서스(Thomas Malthus)는 『인구론』에서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 파국을 맞을 것”이라 경고했죠. 세계는 이 ‘맬서스의 함정’에 빠지는 듯했습니다.그런데 뜻밖에도 이 위기 속에서 ‘해결의 열쇠’를 쥔 곳은 바로 한국이었습니다.

극심한 저출산으로 국가 소멸을 걱정하던 한국은 하루아침에 ‘가장 이상적인 인구 균형 국가’로 재조명받게 됩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 0.6, 이제는 전 세계가 꿈꾸는 수치입니다.”

세계 각국의 정부 관계자들이 한국의 ‘저출산 노하우’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몰려듭니다. 아이를 낳지 않아도 인류가 사라지지 않는 세상. 그 아이러니한 균형 속에서 인류는 처음으로 ‘무한 생존’의 시대를 맞이합니다.

인구 폭발의 역설: 저출산 한국, 세계의 표준이 되다


3. 사랑의 유통기한: 결혼 대신 ‘졸혼’

100년, 200년을 한 사람과 살아야 하는 결혼 생활. 사랑이 아무리 깊어도 세기(Century) 단위의 동행은 인간에게 버거운 일이었습니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현대 사회의 사랑이 고체처럼 단단하지 않고 액체처럼 흘러내린다는 ‘유동하는 사랑(Liquid Love)’ 개념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등장한 새로운 풍속도가 바로 ‘졸혼(卒婚)’입니다. 이혼처럼 관계를 끊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인생을 존중하며 따로 사는 형태가 보편화되었습니다.

“사랑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인생은 너무 기니까요.”

불로장생 시대의 부부들은 서로에게서 독립을 택했습니다. 한편에서는 긴 생애 동안 다양한 관계를 맺는 다부다처제가 부활하기도 했습니다. ‘영원한 사랑’이 물리적으로 가능해진 세상에서, 역설적으로 사람들은 ‘유통기한 있는 관계’에 안도감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관계는 이제 영속적인 헌신이 아니라, 바우만의 말처럼 ‘소비하고 폐기하는 상품’처럼 가볍고 유연하게 변해갔습니다.

사랑의 유통기한: 결혼 대신 '졸혼'


4. 뇌 용량의 한계: 기억 삭제와 백업

몸은 늙지 않지만, 뇌의 저장 용량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수백 년간 쌓이는 방대한 데이터가 뇌를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죠. 결국 인간의 기억은 두 가지 형태로 변질되었습니다.

  1. 자연 소멸: 어릴 적 추억, 첫사랑의 얼굴 등 오래된 기억부터 순차적으로 지워집니다.
  2. 선별적 삭제: 뇌가 ‘생존에 불필요하다’고 판단한 감정적 기억들을 자동 삭제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억 백업 서비스’가 등장했습니다. 외장 하드에 데이터를 옮기듯 내 기억을 서버에 저장하고 필요할 때 다운로드하는 것이죠. 하지만 부작용은 컸습니다. 기억을 해킹하거나 조작하는 범죄가 늘어났고, “기억을 잃은 나를 진짜 나라고 부를 수 있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이 사회를 강타했습니다.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John Locke)는 “인간의 정체성은 육체가 아니라 기억(의식의 연속성)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다면 기억을 삭제하고, ‘편집된 기억’만 남은 나는 과연 100년 전의 나와 ‘같은 사람’일까요? 기억 백업 서비스 앞에서 인류는 로크가 던진 질문, “나를 나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뇌 용량의 한계: 기억 삭제와 백업


5. 끝없는 배움: ‘학위 수집가’의 시대

죽음의 공포가 사라진 자리는 거대한 ‘지루함’이 채웠습니다.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는 “인생은 고통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와 같다”고 말했죠. 시간이 무한해지자 사람들은 새로운 목표에 목말라했습니다. 그 결과 ‘학위 수집 열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전공만 12개째입니다. 올해는 하버드에서 우주철학을 배워볼까 해요.”

교육은 더 이상 젊은이들의 전유물이 아니었습니다. 대학은 수백 살 먹은 학생들로 붐비는 ‘무한 배움의 시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끝이 보이지 않는 경쟁 속에서 인간은 다시 한번 근원적인 질문에 부딪힙니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끊임없이 배우는가?”

끝없는 배움: '학위 수집가'의 시대


6. 늙음을 선택한 사람들: ‘호모 네츄럴 에이징’

모두가 영원한 젊음을 누리는 세상에서, 역설적으로 “나는 늙어가고 싶다”고 선언하는 사람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호모 네츄럴 에이징(Homo Natural Aging)이라 불렀습니다. 이들은 실존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사상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주름진 얼굴에 인생의 나이테를 새기며 자연의 순리를 따르겠다고 말합니다. 팽팽한 피부만이 미덕인 사회에 반기를 든 것입니다.

“영원히 젊은 세상에서, 늙어감을 선택하는 건 가장 큰 용기입니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죽음으로 향하는 존재(Sein-zum-Tode)’라 정의하며, 죽음을 직시할 때 비로소 삶이 진정성을 갖는다고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이들은 영원이라는 가짜 안락함 대신, ‘유한함’이라는 진짜 삶을 선택한 용기 있는 자들입니다.

늙음을 선택한 사람들: '호모 네츄럴 에이징'


7. 권태와의 전쟁: 튜닝하는 인간

죽음의 공포가 사라진 자리는 ‘지루함’이 채웠습니다. 사람들은 권태를 이기기 위해 자극을 찾아 나섰습니다. 전 세계를 도보로 횡단하는 장기 여행족이 급증했고, 관광 산업은 전례 없는 호황을 맞았습니다.

의료 산업은 치료가 아닌 ‘변신’을 위한 곳이 되었습니다. 5년마다 얼굴을 갈아엎는 ‘페이스 리뉴얼’이 유행하며,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말한 ‘시뮬라시르(Simulacra, 원본 없는 복제)’의 세상이 도래했습니다.

이제 내 얼굴은 부모님이 물려주신 고유한 원본이 아닙니다. 유행에 따라 언제든 교체 가능한 이미지일 뿐입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내면의 깊이를 보지 않고, 겉으로 보이는 기호(이미지)만을 소비하게 되었습니다.

권태와의 전쟁: 튜닝하는 인간


8. 일자리의 정체: 끝나지 않는 정년

직장은 혼란 그 자체였습니다. “신체 나이 30세, 실제 나이 120세”인 사원이 즐비한 세상에서 정년퇴직이란 개념은 사라졌습니다. 이제 정년의 나이는 탄생 나이가 아니라 신체 나이로 계산되었습니다. 회사는 경험 많은 100년 차 경력직을 선호했고, 갓 사회에 나온 진짜 젊은 세대는 설 자리를 잃었습니다.

“나는 올해로 신체나이 38세입니다. 실제 나이는 127세지만요.”

결국 일은 생존 수단이 아닌, 지루한 시간을 때우기 위한 ‘놀이’ 혹은 ‘자아실현의 도구’로 성격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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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음말: 끝이 있기에 아름다운 것들

불로장생약이 인류에게 던진 것은 생명의 연장이 아니라, ‘삶의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었습니다.

죽음이 사라진 세상에서 우리는 과연 더 행복해졌을까요?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안도감은, 역설적으로 ‘지금 이 순간’의 절박함과 소중함을 앗아갔습니다. 끝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뜨거웠던 사랑도, 열정도 미지근해졌습니다.

불로장생약이 인류에게 준 것은 축복이 아니라, 철학자 버나드 윌리엄스(Bernard Williams)가 논문 「마크로풀로스로부터의 교훈」에서 예견한 ‘영생의 따분함(Tedium of Immortality)’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욕망이 충족되고 나면, 남은 영원한 시간은 무의미한 반복일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끝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뜨거웠던 사랑도, 성취감도, 죽음이 사라지자 빛을 잃었습니다. 영원히 살 수 있는 인간은 오히려 ‘끝이 있다는 것의 아름다움’을 사무치게 그리워하게 되었습니다.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의 의미는 영원함에 있지 않다. 오히려 유한함이 우리를 진지하게 만든다.”

우리가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이 기적인 이유는, 언젠가 그 눈을 뜨지 못할 날이 오기 때문입니다. 끝이 없으면 시작도 없는 법입니다.

불로장생의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릅니다. 유한하기에 더욱 찬란한 오늘, 당신의 하루는 안녕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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