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는 집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마주하는 풍경이죠. 잘 놀다가도 갑자기 터지는 울음소리, 억울함을 호소하는 첫째의 눈물과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발뺌하는 둘째의 모습 말이에요. 7살 오빠와 4살 여동생을 키우는 아빠로서 제가 내린 결론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첫째에게는 절대적인 권위를, 둘째에게는 명확한 규칙을 가르치는 것이 집안의 평화를 가져오는 유일한 길입니다.
집안에 평화를 가져올 핵심 요약 3줄
- 첫째의 질투는 애정 결핍이 아니라 권력의 상실에서 오기에 ‘첫째 우선순위’를 확실히 세워주세요.
- 둘째의 귀여움에 속아 무조건 감싸면 둘째는 생존을 위해 거짓말을 배우게 되니 주의가 필요해요.
- 둘째와 첫째를 한 팀으로 묶어주는 ‘협동 놀이’를 통해 경쟁자가 아닌 동료임을 인지시켜주세요.
어제저녁이었어요. 거실에서 갑자기 7살 아들이 엉엉 울며 소리를 지르더라고요. 달려가 보니 아끼던 레고 배가 부서져 있었고, 옆에는 4살 딸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 있었죠. 순간적으로 저도 모르게 “동생이 그럴 수도 있지, 오빠가 좀 참아”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아들의 눈을 보니 가슴이 덜컥 내려앉더군요. 그건 단순히 장난감이 망가진 슬픔이 아니라, 아빠마저 자기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깊은 배신감 섞인 눈빛이었거든요.

(소쿨이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해를 돕기 위해 제작한 이미지 입니다.)
많은 부모님이 3살 터울이면 딱 좋다고들 하시죠. 하지만 직접 겪어보니 이건 전쟁터가 따로 없습니다. 7살은 이제 자기 주관이 뚜렷해지고 부모의 인정을 갈구하는 시기인데, 4살 동생은 말귀는 알아듣는 듯하면서도 본능에 충실해 첫째의 영역을 자꾸 침범하거든요. 이 미묘한 심리 싸움에서 부모가 중심을 잡지 못하면 첫째는 삐뚤어지고 둘째는 영악해지기 십상입니다.
첫째 아이가 동생을 질투하는 건 사실 너무나 당연한 본능입니다. 3년 동안 독점하던 왕좌를 갑자기 나타난 작은 생명체에게 뺏긴 기분일 테니까요. 제가 상담 서적도 뒤져보고 실제 육아 현장에서 부딪히며 깨달은 점은, 첫째의 질투를 멈추게 하려면 동생을 사랑하라고 강요하기보다 첫째의 자존감을 먼저 채워줘야 한다는 거였어요.
흔히 하는 실수 중 하나가 “동생이니까 네가 양보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첫째에게 사형 선고나 다름없습니다. 저는 대신 “이 장난감은 오빠 거니까 오빠 허락을 먼저 받아야 해”라고 선을 그어줍니다. 첫째에게 소유권과 결정권을 부여하면 아이는 신기하게도 여유를 찾더라고요. 자기가 존중받는다는 확신이 들면 비로소 동생에게 관대해지는 모습을 보입니다.
※ 첫째와 둘째의 심리 상태 및 대응 전략
[첫째 (7세 남아)]
- 심리 상태 : 권력 상실감, 부모의 사랑 확인 욕구
- 주요 행동 : 퇴행 현상, 동생 몰래 괴롭히기, 억울함 호소
- 대응 핵심 : 첫째만의 특권 부여, 1:1 데이트 시간 확보
[ 둘째 (4세 여아)]
- 심리 상태 : 생존 본능, 모방 심리, 약자 전략 활용
- 주요 행동 : 귀여운 척하기, 거짓말로 상황 모면, 오빠 따라 하기
- 대응 핵심 : 안 되는 행동에 대한 단호한 훈육, 오빠에 대한 예의 교육

(소쿨이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해를 돕기 위해 제작한 이미지 입니다.)
여기서 정말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바로 둘째의 거짓말입니다. 4살 정도 되면 아이들은 눈치가 굉장히 빨라집니다. 자기가 잘못했을 때 울거나 예쁜 짓을 하면 상황이 해결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죠. 이걸 그냥 귀엽다고 넘어가면 큰일 납니다. 제가 겪은 일인데, 둘째가 오빠의 그림을 찢어놓고는 오빠가 그랬다고 거짓말을 하더라고요. 그때 제가 둘째 편을 들었더니 첫째는 문을 닫고 들어가 반나절을 울었습니다.
둘째를 가르칠 때는 ‘약자’라는 프레임을 벗겨내야 합니다. 잘못한 건 명확히 짚어줘야 해요. “네가 오빠 물건을 만져서 오빠 마음이 아프대. 이건 네가 사과해야 하는 일이야”라고 정확히 말해줘야 합니다. 둘째가 울음으로 상황을 모면하려 할 때 단호하게 “울지 말고 말로 해”라고 가르치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둘째는 평생 ‘피해자 코스프레’로 이득을 취하는 성격으로 굳어질 수 있거든요.
그렇다면 이 둘을 어떻게 하면 친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 저는 ‘공동의 목표’를 주는 놀이를 적극 활용합니다. 형제 혹은 남매가 서로 경쟁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한 팀이 되게 만드는 거죠.
첫째, 거대 성 쌓기 놀이입니다.
큰 종이 박스나 블록을 이용해서 둘이 같이 들어갈 수 있는 집을 만들게 하세요. 7살 오빠는 설계와 구조를 담당하고, 4살 동생은 소품을 배치하거나 스티커를 붙이는 역할을 줍니다. 완성된 후에 그 안에서 둘이 같이 간식을 먹게 하면 엄청난 유대감이 생깁니다.
둘째, 보물찾기 합동 작전입니다.
제가 집안 곳곳에 간식을 숨겨두고 “둘이 손을 잡고 모든 보물을 찾아오면 미션 성공이야!”라고 외칩니다. 여기서 핵심은 반드시 ‘손을 잡고’ 다녀야 한다는 규칙입니다. 오빠가 동생을 이끌어주고 동생이 오빠를 따르는 자연스러운 서열과 협동이 이루어집니다.

(소쿨이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해를 돕기 위해 제작한 이미지 입니다.)
셋째, 역할 바꾸기 놀이입니다.
가끔은 둘째가 엄마가 되고 제가 아기가 되는 놀이를 합니다. 첫째는 아빠 역할을 하죠. 그러면서 서로의 고충을 느껴보는 시간을 갖는 건데, 의외로 아이들이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부모 입장에서도 배울 점이 많더라고요.
훈육에 있어서도 저만의 원칙이 있습니다. 절대 둘이 같이 있는 자리에서 혼내지 않는 것입니다. 특히 첫째는 자존심이 세지는 시기라 동생 보는 앞에서 혼이 나면 큰 상처를 받습니다. 혼낼 일이 있으면 조용히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1:1로 이야기하세요. 칭찬은 반대로 동생 앞에서 아주 크게 해 줍니다. “우리 아들이 동생을 이렇게 잘 챙겨주다니 정말 멋진 오빠구나!”라고요. 그러면 아이는 그 칭찬에 걸맞은 행동을 하려고 스스로 노력하게 됩니다.
실패담도 하나 공유해 드릴게요. 초반에 저는 무조건 ‘공평’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사과 하나도 똑같은 크기로 잘라주려 애썼죠. 그런데 그게 오히려 역효과를 냈습니다. 아이들은 ‘똑같은 양’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지’에 관심이 있더라고요. 공평함에 집착하기보다 각자의 시기에 맞는 필요를 채워주는 게 맞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소쿨이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해를 돕기 위해 제작한 이미지 입니다.)
3살 터울 남매를 키우는 동료 부모님들께 드리고 싶은 말은, 지금 이 전쟁 같은 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거예요. 아이들이 싸우는 건 그만큼 서로 에너지를 주고받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부모가 너무 완벽하게 중재하려다 지치지 마세요. 가끔은 한 발짝 뒤에서 지켜보며 아이들끼리 해결할 시간을 주는 것도 방법입니다.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 드릴게요. 여러분은 오늘 아이들에게 “너는 나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야”라고 개별적으로 말씀해 주셨나요? 오늘 밤 아이들이 잠들기 전, 첫째와 둘째의 귀에 각각 따로 속삭여주세요. 그 한마디가 내일의 싸움을 한 번은 줄여줄 힘이 될 겁니다.
자주 묻는 질문 Q&A
Q: 첫째가 동생을 자꾸 때리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폭력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음을 단호히 알리되, 그 이면의 분노를 먼저 읽어주세요. “동생이 네 물건을 건드려서 화가 났구나? 하지만 때리는 건 안 돼. 그럴 땐 아빠에게 도움을 요청해”라고 대안을 제시해 주세요.
Q: 둘째가 첫째 물건을 자꾸 망가뜨려요.
A: 둘째에게도 ‘오빠의 영역’이 있음을 명확히 교육해야 합니다. 오빠의 소중한 물건은 둘째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보관할 수 있는 전용 보관함을 만들어주는 것도 물리적인 해결책이 됩니다.
Q: 남매가 하루 종일 싸워서 너무 지쳐요.
A: 부모의 에너지가 고갈되면 짜증이 나가기 마련입니다.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각 아이와 완전히 분리된 시간을 가져보세요. 아빠는 첫째와 산책을, 엄마는 둘째와 목욕을 하는 식으로요. 분리된 시간 동안 채워진 사랑이 합쳐졌을 때의 갈등을 줄여줍니다.
여러분은 오늘 아이들과 어떤 하루를 보내셨나요? 댓글로 여러분만의 남매 육아 노하우를 공유해 주세요!
참고 사이트
여성가족부 부모교육 자료실 : http://www.mogef.go.kr
육아정책연구소 : http://www.kicce.re.kr
👉 관련글 보기
둘째 출산 고민, 경제적 부담과 행복 사이에서 (두 아이 부모의 고찰)